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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체급식

서울대 내 채식뷔페

구제역 여파로 존재감 각인
르포- 서울대 내 채식뷔페
2011년 01월 26일 (수) 19:38:08
구제역 여파로 존재감 각인
르포- 서울대 내 채식뷔페

   
‘현미콩밥, 버섯들깨 수제비, 떡볶이, 두부탕수, 쌈다시마, 모둠쌈, 연근튀김….’

1월24일 찾은 서울대학교 음대‧ 미술대 식당 한 켠에는 조금 특별한 공간이 있다. 가격은 5,000원으로, 일반 메뉴에 비해 두 배 가량 비싸면서 고기와 달걀, 유제품을 일체 쓰지 않은 채식뷔페이다. 작년 10월에 문을 열었다고 한다. 이곳은 기자의 당초 예상과 달리 10가지가 넘는 다양한 먹거리가 학생과 교직원들을 맞고 있다.

식권을 끊고 안으로 들어서니, 좌석이 빼곡이 들어차지는 않았지만 제법 많은 사람이 식사를 하고 있다. 밥을 먹는 사람들 중에는 까무잡잡한 피부에 한국말을 유창하게 하는 인도 여학생과 금발 벽안을 한 서양인 남성도 보인다. 여타 단과대 식당들에 비해 교직원으로 보이는 이들의 비율이 유난히 높은 것도 두드러진다.

   
가능하면 다양한 음식을 고르려고 반찬들을 조금씩 골고루 집어 식판에 담았다. 자리에 앉아 먼저 버섯들깨 수제비를 한 입 떠먹어 보았다. 깨 특유의 고소한 향기가 퍼지면서 아낌없이 듬뿍 들어간 표고와 팽이버섯이 씹는 맛을 더해준다. 두부탕수와 떡볶이는 그 흔한 돼지고기와 어묵이 없어도 감칠맛이 났다.

사실 기자는 진한 맛을 좋아하는 편이다. 그래서인지 조금 허전한 기분이 든다. 다소 부족한 느낌은 푸짐한 모둠쌈이 채워줬다. 옆자리에 앉은 남학생 둘은 쌈요리를 좋아하는지 상추와 배추를 산더미처럼 쌓아 놓고 담소를 즐기며 천천히 먹는다.

방학 중인데도 하루평균 150명 이용
채식인 건강 미용 등 이용 배경 다양


채식뷔페를 이용하는 배경도 각양각색일터인데, 과연 이용자들의 만족도는 높을까, 낮을까. 김모 교수(인문대)는 “오천원이면 학생들 주머니 사정으로 볼 때 조금 비싼 것 같지만 이 정도의 질을 유지한다면 오히려 값을 올려도 될 것 같은 생각이 든다”고 말한다. 정말 맛있는 채식요리라면 가격은 그다지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반응이다. 그는 거의 매일 채식뷔페를 찾는다고 한다.

하루 평균 채식뷔페를 찾는 사람들의 숫자는 약 250명에 이른다. 방학인 요즘도 150명 정도가 이곳에서 식사를 한다고 한다. 서울대 재학생 전체로 볼 때는 많다고 보기 힘들지만 한 단과대 식당에 국한해 본다면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숫자다. 학교 내 다른 식당에 비해 ‘단골손님’이 많은 점도 채식뷔페의 특징이다. 종교나 개인의 신념 때문에 채식을 하는 외국인 학생들에서 건강․ 다이어트를 위해 찾는 학생들까지 이곳에 오는 사람들은 다양하다.

   
채식뷔페 모습.  
서울대 학생식당의 채식뷔페는 점점 늘어나는 외국인 학생들을 배려하고, 학내 채식 동아리 ‘콩밭’의 지속적인 건의가 수용된 결과다. 여기에 전국을 휩쓴 구제역 파동도 채식뷔페의 존재 가치를 더 높이는 데 영향을 주었다. ‘콩밭’의 회장인 서울대학교 영문과 4학년 강대웅 군은 “채식뷔페가 문을 열 때 동아리 측에서 채식 요리책을 제공하기도 했다”며 “영양사와 조리사 분들이 많은 연구를 하고 계시지만 김치는 생선젓갈이 들어간 보통 김치이고, 쌈과 샐러드는 거의 바뀌지 않는 점은 아쉬운 부분”이라고 밝혔다.

채식뷔페라는 서울대 식당의 실험은 전반적으로 볼 때 합격점을 얻고 있는 것 같지만 한계도 있다. 대량으로 음식이 제공되기 어렵고 단가도 높일 수 없으며 메뉴 개발에 어려움이 적잖다. 물론 서울대처럼 직영이 아닌, 위탁급식을 하는 학교에선 채식뷔페 운영에 드는 비용과 수고 때문에 아예 손대지 않을 가능성도 짙다. 그런 점에 비춰보면 서울대 내 채식뷔페는 아주 특별한 공간이 아닐 수 없다. 채식주의자 등 사회 소수자를 위해 국내 단체급식의 갈 길이 아직 요원하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정세진 기자